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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중세/근대 국가발전과 전쟁의 역사 요약: 일본(Japan)

일본의 1478년부터 1605년까지는 전국시대라 부릅니다. 끝없는 전쟁을 통해 사회적, 정치적으로 큰 변화가 있었던 시기라 할 수 있습니다. 아시카가 막부의 중앙 정부가 민심을 잃어가기 시작하자 지방의 영주들은 자신들의 세력을 키우는 것에 더욱 집중했고 이러한 경향은 당시 일본의 수도였던 교토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일수록 더 심했습니다.


막부의 영향력이 약해진 이유로는 여러 요인이 있었습니다. 중국과의 교역이 크게 늘면서 경제가 발전하자 지역 경제에서 화폐가 크게 중요해지고, 동시에 전국의 상업도시들이 형태를 갖추면서 사회 전 계층이 자치에 대한 욕구가 커졌습니다. 세금 인상, 기근과 지진피해가 더해지면서 농민들의 반란이 시작되었습니다. 각 지방의 혼란은 후계자 계승 문제와 관련한 오닌의 난을 기점으로 더욱 커져만 갔습니다. 호소카와 가문과 동맹 세력이 일본의 통치권을 놓고 야마나 가문과 충돌했고 오닌의 난은 주변지역으로 확대되며 결과적으로 막부의 힘을 더욱 약화시켰습니다.


중앙 정부가 행사하던 권한을 각 지역의 영주들이 차지했고, 다케다 가문이나 아마가 가문 등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던 세력은 점진적으로 자신들의 영역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이 시기에 지방 영주들 중 상당수가 부하에게 배신을 당해 권력을 빼았기는 일도 있었는데, 이를 게코쿠조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하극상이라는 표현으로 더 유명합니다.)


전국에서 전쟁은 여전히 지속되었으나 통일의 가능성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오다 노부나가는 대부분의 중앙 지역을 장악하며 다투던 가문들을 하나로 집결시키는 리더쉽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1582년 수하의 장군에게 배신 당하면서 오다 노부나가의 야망은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이 때 노부나가가 가장 신임했던 장군이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후임자로 등장하며 노부나가가 이루지 못한 지방 영주들의 통합을 추진합니다. 히데요시는 낮은 신분으로 인해 진정한 쇼군으로 인정받지 못하였으나 천황으로부터 섭정으로 인정받을 정도로 강력한 권력을 손에 쥐게 되었습니다. 


이후 일본은 수차례 조선을 공격했으나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장군과 명나라 진린의 연합군에게 패하자 다시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즈음 간토 지방의 맹주인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오랜 숙원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우리 한국인(조선인)이라면 정말 분노하게 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우리의 뼈아픈 역사를 배우고 깨우치며 그것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하루 하루 소홀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그리고 2차세계대전에서 보여준 일본의 잔혹함과 제국주의는 본받을 것이 못되지만 명목기준 GDP 세계 3위, PPP기준 GDP 세계 4위를 유지하고 있는 일본은 분명 변화와 도전을 즐길 줄 아는 나라였던 것은 확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