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

중세/근대 국가발전과 전쟁의 역사 요약: 인도(india)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인도 무굴 제국의 멸망은 18세기 영국의 인도 친출과 시기적으로 일치하긴 합니다만, 영국의 압력과는 무관하게 당시 무굴 제국은 몰락의 길에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 즈음 무굴 제국의 자랑거리었던 넓은 영토와 강력한 군사력 그리고 높은 수준의 문화는 과거의 역사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무굴제국의 시작은 이슬람교도가 된 몽골 제국의 후손들이 건국한 아프가니스탄과 투르키스탄입니다. 무굴 제국의 시조가 된 바부르는 1504년에 카불을 점령했으며 이곳을 근거지로 인더스강 지역까지 동쪽으로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1526년에는 인도의 중심부로 진격했고 1차 파니파트 전투에서 델리의 마지막 술탄(인도의 왕)인 이브라힘 로디를 물리쳤습니다. 1530년 바부르의 아들 후마윤이 후계자가 되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 획득한 영토의 대부분을 잃고 말았습니다. 1540년 페르시아로 도망쳐야 하는 상황까지 몰렸으나 노력 끝에 군대를 다시 일으켜 1555년 다시 델리를 되찾았습니다.


1556년 2월 14일 무굴 제국의 부활을 위해 벌인 시칸다르와 전쟁이 한창이었던 이 날, 후마윤의 뒤를 이어 아들인 악바르가 황제로 자리 잡았습니다. 최초의 승리를 13세에 경험한 악바르는 단시간에 제국의 미래를 내다보며 책임질 인물로 확고하게 자리잡습니다. 행정기관과 세금제도를 개혁하고 문화 발전 또한 게흘리 하지 않았으며, 특히 종파를 가리지 않고 인재를 등용했습니다. 이러한 업적에 악바르는 지금까지도 무굴 제국 최고의 황제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굴 제국은 악바르가 사망한 후 약 100년 정도 밖에 존속하지 못했습니다. 무굴 전성기 최후의 황제라고 할 수 있는 아우랑제브는 이슬람교도에 광적으로 집착하였고, 선대의 가르침 이었던 종파에 관계없는 인재 등용을 저버리고 오히려 힌두교도를 비롯한 다른 종교들을 탄압했습니다. 50년의 재위 기간 동안 지속된 그의 종교 탄압에 점차 백성들의 반감이 커져 갔으나, 아우랑제브는 이에 개의치 않고 힌두교도들을 개종시키기 위해 사원을 파괴하고 비(非)이슬람교도에 대한 세금을 부과했습니다.


아우랑제브가 사망한 뒤에 무굴 제국의 통치력은 급격히 악화되었습니다. 각 지역의 이슬람 귀족들이 자치 왕국을 세우는 상황이 벌어졌고, 이후 27년 동안 무굴제국은 주변국들과 마찰에 시달렸습니다. 결국 1739년에 페르시아와 아프간 군대가 델리를 침략하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인도 최대의 제국이었던 무굴 제국은 힘을 잃고 인도는 수많은 군소국가로 쪼개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열강의 선두를 달렸던 영국에게 더 없이 좋은 기회였고, 영국은 강력한 군사력과 기술력을 앞세워 쪼개진 군소국가들을 압도하면서 인도의 전역을 장악하게 되었고 동인도회사가 건설되며 인도는 열강들의 식민지로 전락해버렸습니다.


오늘 인도(india)의 이야기는 여기 까지입니다. 어느 국가에서든 문화나 인종 신분을 가리지 않는 인재등용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세종대왕은 민심을 살피고 인재를 찾기위해 신분을 위장하여 궁궐 밖으로 나가기도 했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세계의 역사를 둘러보면 어느 국가든 훌륭한 리더가 줄줄이 이어지는 사례도 없고 그렇다고 꼭 악순환만 끝없이 반복되는 경우도 잘 없는 것 같습니다. 세계와 자연 그리고 지구는 조화와 뒤섞임을 너무나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자연의 흐름을 이해하며 즐길줄 아는 사람이 진정으로 훌륭한 리더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미래의 인공지능(AI) 시대에는 인간이 어떤 역할을 하며 또 인재등용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지 궁금해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