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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중세/근대 국가발전과 전쟁의 역사 요약: 포르투갈

1492년 당시 포르투갈은 대서양 대륙의 끝에 위치한 인구 백만명 정도의 조그만한 국가였습니다. 오스만국과 베니스인의 방해로 지중해 동쪽과 교역이 끊어지면서 포르투갈은 남쪽방향으로 관심을 돌렸습니다. 당시의 관심사는 북아프리카 시장의 향료와 금이었습니다. 14세기 중반에 들어 대서양에 군집해 있는 섬들을 발견했고 이곳에 정착해 설탕을 재배했습니다. 헨리 왕자의 후원에 힘입어 항해 기술을 발전시켰고 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포르투갈은 조금씩 영역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1487년경에 아프리카 대륙의 최남단에 도달하였고, 그로부터 10년 만에 오랫동안 목표로 삼았던 곳 인도까지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연히 폭풍을 만나 상상하지도 못한 브라질을 발견한 포르투갈은 그 후 수십 년 동안 브라질에서 목재와 풍부한 설탕을 생산할 수 있는 식민지를 건설했습니다. 포르투갈의 항해사들은 지속적으로 아메리카 개척에 관심을 쏟았고 그들 중에서도 스페인에 고용된 마젤란을 선두로 1519년 세계일주를 시작했습니다. 상호협약에 의해 신대륙의 대부분을 스페인에게 양보한 포르투갈은 동인도 제도를 교역에 중점으로 두고 인도, 아프리카, 말레이시아의 주요지점에 교역소를 건설해 수년간 많은 수익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대서양에서 동인도 제도로 연결되는 포르투갈의 교역독점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6세기 말에 잠시동안 스페인의 지배를 받기도 했고, 네덜란드의 신교도들과 영국인으로부터 해상 교역에 견제을 받게 되었습니다. 네덜란드와 영국이 동인도 제도에서 서로 경쟁적으로 교역회사를 세우기 시작했고, 포르투갈은 점차 그 지역에서 밀려나기 시작했습니다. 한 때 세계 최고를 자랑하던 항해술을 비롯해 기술, 정보, 지식 등 여러 면에서 유럽의 강대국에게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에게 정복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영국군의 힘을 빌려야한 하는 상황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네요. 전 오래 전부터 포르투갈은 에스파냐(스페인) 옆에 붙어 있는 국가로만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축구와 항해술 부분에서 아주 가끔씩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으나 포르투갈도 제겐 먼 나라로 느껴집니다. 이렇게 세계사를 정말 조금씩이지만 써나가면서 느끼는 점은 대부분의 국가들이 다들 전성기를 누리고 많은 수익을 거두기도 하다가 이후엔 언제 그랬냐는 듯 쇠락의 길을 걷기도 하는 점이 역사의 흥미로운 점인 것 같습니다. (사실, 아직 수백개의 국가를 다루지 못했기에 대부분의 국가라고 표현한 부분은 섣부른 표현일 수도 있겠습니다.)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가 유럽 대륙의 끝에 위치한 포르투갈에 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정말 대단했구나 하고 세계지도를 열어봤는데 프랑스 바로 가까이에 에스파냐가 있고 바로 그 바로옆에 포르투갈이 있었습니다. 복잡하게만 봐왔던 유럽에 대한 제 인식에 착각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