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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중세/근대 국가발전과 전쟁의 역사 요약: 영국

품품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농업국가 영국은 1492년 황실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프랑스 영토의 소유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기나긴 전쟁을 치르고 그 후유증을 회복하는 중이었습니다. 18세기 초 국가 주위의 모든 섬을 통일하여 대영제국으로 거듭난 영국은 전 세계에 주요 식민지를 개척했습니다. 이러한 힘을 바탕으로 19세기에 이르러 산업화를 인류 최초로 이룩하였고 그 결과 세계 최대의 제국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섬나라라는 지리적 유리한 위치와 개인의 경제적 자유가 비교적 많이 보장된다는 점, 그리고 국민들이 능동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문화적 배경이 큰 작용을 하였습니다. 


17세기 초 영국은 카리브 해와 북미 대륙에 식민지를 건설했습니다. 카리브 해 섬에서 생산되고 거래되는 설탕은 초기에 영국에게 엄청난 수익을 가져다 주었고 메사추세츠와 버지니아를 통해 북미 대륙에 정착한 터전이 가꾸어지자 점점 더 많은 일꾼들이 땅과 종교적인 자유, 그리고 새로운 삶의 기회를 찾아 북미로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식민지에서는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가 늘 환영받았고 아일랜드인과 유럽 본토에서 건너온 사람들도 똑같은 대우를 받았습니다. 


영국 신민지는 캐다나에서 프랑스군과 대립했고, 플로리다에서 소수의 스페인군과 대립했으며 서부 산악지대에서는 원주민들과 접해 있었습니다. 인도를 시작으로 18세기 중반 유럽과 북미에서 벌어진 프랑스와의 많은 전쟁에서 승리하거나 유리한 위치를 선점한 영국은 캐나다를 영국의 영토로 편입시켰고, 서쪽으로 영토를 확장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영국은 1776년 혁명전쟁에서 아메리카 식민지를 잃는 뼈아픈 패배를 겪었습니다.


잠깐 제 의견을 첨언하자면, 식민지에서 환영 받은 사람들 중에 흑인 노예는 포함되지 않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언어가 통하고  똑같이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인격체를 동물처럼 다루었던 인류의 흑역사는 여러 번 곱십어 생각해야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노예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흑인에만 해당된다기 보다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신분의 차이가 발생하면서 부터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로 알려진 고조선에도 노비라는 신분이 존재했으니 말입니다. 수천년 간 신분을 토대로 인간간의 불평등은 반복되었습니다. 불과 수십년 전에서도 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의 인종차별과 유대인학살이 있었고,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영화나 드라마의 소재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인기 다큐멘터리 드라마 뿌리와 노예12년 영화 등에서 노예의 역사가 재조명 되며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참고로 뿌리나 노예12년을 아직 못 본분이 있다면 꼭 시간을 내어보시기 바랍니다. 배울 점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