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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중세/근대 국가발전과 전쟁의 역사 요약: 스페인(에스파냐)

하나로 합병된 카스티야와 아라곤 왕국은 1492년 남아 있는 무어인들을 북아프리카로 쫓아낸 결과 스페인의 재통일을 이루어 낼 수 있었습니다. 스페인은 당시 신대륙 탐험의 선구자였던 콜럼버스의 첫 항해를 지원하였고, 새로운 대륙을 발견하기도 했지만 그들이 많은 부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아시아 대륙이라 믿었던 그곳은 아메리카 대륙이었습니다. 대륙 발견 초기에는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점차 내륙 지대로 탐험함에 따라 아즈텍과 잉카문명이 발견되었고 상황은 반전되었습니다. 그리고 알려진 바와 같이 이 두 문명은 야만적인 스페인 군대에 의해 처참히 파괴되고 수많은 보물을 빼았겼습니다.


아즈텍과 잉카 문명이 연이어 발견됨에 따라 스페인 정복자들은 신대륙에 대한 관심이 더욱 늘어나게 되었고, 더 많은 보물과 문명을 찾기 위해서 남과 북을 가로질러 탐험했습니다. 특히나 이들은 전설적인 금의 도시 엘도라도(순금으로 길을 포장하고 금가루를 바른 사람들이 산다는 전설의 도시)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탐험이 큰 성화를 올리지 못하자 그들은 원주민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방향으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스페인의 식민지에서 스페인으로 돌아가는 보물선을 다른 유럽의 국가들 그리고 해적들이 약탈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평온할 날이 많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본국에서는 신교도들과의 세력다툼이 반복되었고 식민지에서도 재산과 영토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 이어졌습니다.


18세기 말 스페인 제국의 번영은 끝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신대륙에서 가져온 수 많은 자원은 사치와 이익 없는 전쟁을 치르는 데 허비되었고 본국 그리고 식민지 양쪽 모두 변화와 발전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식민지의 지배 계층은 무지한 토착민들을 혹사시키는 사악한 관리자로 변모했고, 결국 제국을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제국의 수입을 넘어서면서 식민지는 하나 둘씩 강대국에게 빼앗기기 시작했습니다. 스페인의 경제력과 군사력은 부유한 유럽국가들에게 뒤쳐졌고 이후 나폴레옹의 프랑스군대가 침략했을 때에는 국가적인 저항을 하지 못한채 항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콜럼버스를 후원하여 신대륙을 가장 처음 발견한국가 스페인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세계사를 조금씩이나마 이렇게 공부하기 전까지만 해도 콜럼버스가 영국인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콜럼버스가 발견한 신대륙이 북아메리카인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조금 씩 더 배워갈 수록 세상은 정말 치밀하게 짜였고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어느 것 하나 가볍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신대륙을 발견하면서 타국들 보다 좀 더 유리한 위치에 있을 수 있을 것 같지만, 국가의 내실을 다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 수 있는 대목인 것 같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종종 봤던 "적은 내부에 있다" 는 표현이 떠오릅니다. 손자병법에 나온 표현이라고 듣기도 했는데 이 표현의 정확한 최초의 출처는 잘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