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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중세/근대 국가발전과 신대륙 식민지역사 요약: 프랑스

프랑스는 유럽의 선진국들 중에 경제력, 군사력 및 지형적 위치에서도 가장 유리한 위치에서 식민지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식민지 시대 초기에는 해외 교역과 제국 건설에 있어 인접한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비해 뒤쳐졌지만 활동 면에서는 결코 뒤지지 않았고 북아메리카 지역을 영국보다 먼저 탐험하고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프랑스는 뉴펀들랜드 섬의 어업권과 모피거래를 장악하고 아메리카를 거쳐 태평양과 아시아에 연결되는 북서쪽 항로를 개척하고자 하는 야망을 가지고 북아메리카 지역에 진출하였습니다.


16세기 플로리다에 정착했던 프랑스인들은 스페인 군대에 쫓겨났고, 노바 스코샤와 세인트로렌스강을 따라 정착하려고 했으나 결국에는 퀘벡에 완전히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그 후 마퀘트, 샹플랭과 같은 많은 용기를 가진 탐험가들이 오대호를 지나 미시시피강 어귀까지 진출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인은 영구적인 정착을 원하기 보다는 모피 거래를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때문에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달리 원주민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비교적 적은 수의 프랑스 사냥꾼들과 교역인이 북아메리카 대륙으로 항해해왔고 모피 거래로 많은 수익을 거두어들인 후에 자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추후 이들은 뉴올리언즈, 세인트루이스, 맥키낵섬, 디트로이트, 포트 듀퀘인(현재 피츠버그) 등지의 교역로를 따라 요새를 줄지어 건설했습니다.


프랑스의 주 활동 영역은 유럽과 인도, 카리브 해 섬 위주였기 때문에 캐나다를 식민지화 하기엔 자원과 인력이 많이 부족했습니다. 적은 인구수로 대서양 연안에서 무서운 속도로 정장하고 있는 영국인들에게 맞서기에는 턱없이 부족했고, 18세기에 발발한 전쟁에서는 캐나다를 빼앗기는 것은 물론 협상과정에서 주요 향료 생산지인 인도네시아 섬 일부를 영국에 넘겨주었습니다. 프랑스는 19세기 초반 나폴레옹이 유럽에서 치르는 전쟁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독립을 이뤄낸 미국에게 방대한 규모의 소유지를 매각할 때까지 미시시피와 미주리강 유역을 점유하며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유럽의 강대국 특히나 문화강대국으로 불리는 프랑스의 이야기를 신대륙 기준으로 조금 살펴봤습니다. 서유럽의 드넓은 땅을 차지하고 있는 이 나라는 유럽여행의 필수코스로 불리기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영국과 스페인이 식민지 개발에 힘쓰던 당시 프랑스 또한 북미지역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였지만 서유럽 본토지역에서 나폴레옹과 그들의 군사가 강인함을 보였던 것은 그만큼 바깥으로 나갈 자원을 한데 모아 집중했던 결과가 아니었나 하고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만약 북미 대륙의 패자가 영국이 아닌 프랑스가 되었다면 저는 지금 쯤 프랑스어를 열심히 배우고 있을 상황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보니 묘한 기분이 듭니다.


러시아나 캐나다, 미국, 중국, 인도에 비할바는 못되지만 우리나라에 비하면 정말 크고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프랑스를 보며 오랜만에 네이버에서 '국가별 면적' 을 검색해봤고, 세계 43위에 위치한 프랑스를 보면서 정말 내가 모르고 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호주, 브라질과 같은 국가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대륙의 국가들이 정말 넓은 땅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나라들이라도 결코 조용히만 살아오진 못했을텐데 어떻게 이렇게 넓은 영토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는지 역사의 새로운 궁금증이 생겨났습니다. 


추 후 넓은 영토를 가진 국가들이 그 토지를 어떻게 확보하고 지켜왔는지에 대해 다뤄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