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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중세/근대 국가발전과 전쟁의 역사 요약: 오스만/오스만제국

오스만제국은 13세기에 건설되었으며 16~17세기에 걸쳐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곧이어 북아프리카, 소아시아, 발칸반도, 러시아 남부까지 광활한 영토를 확보한 강대국으로 발전했습니다. 오스만인들은 수 차례의 시도 끝에 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확보하면서 서쪽으로 연결되는 통로이며 고대 로마제국 영토 진입의 교두보가 되었던 도시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1529년에는 지중해 서부 해안과 오스트리아 빈 부근까지 진출했습니다. 당시 오스만제국의 확장은 어느 국가도 막을 수 없을 것 처럼 보였습니다만, 그들에게도 한계가 분명 존재했습니다. 


오스만의 기술 발전이 점차 유럽의 속도에 뒤쳐지게 되면서 대포와 포병까지 유럽에서 물자를 조달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강력한 기술과 조직력을 보유한 유럽 국가들에게 밀리던 오스만 제국은 오스트리아의 빈 공략 실패(1683년) 이후로 번영의 시대를 마감하게 됩니다.


오스만 제국은 왕위 계승에 많은 다툼이 있었고 이로 인해 많은 국력이 소진되었으며 산업화 실패와 부패한 관료체제가 제국의 쇠락을 더욱 가중시켰습니다. 오스만제국에게 막대한 이득을 안겨주었던 아시아와 유럽간 중계무역도 유럽의 발전된 항해술로 인해 유명무실해지고 말았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유럽인들의 동인도 지역 무역을 들 수 있습니다. 더욱이 이때부터 오스만제국이 유럽의 선진 물품을 필요로 하는 상황으로 국면이 전환되고 있었습니다.


제국의 경쟁력 하락은 고스란히 군대의 쇠락으로 연결되었습니다. 그럴 수록 오스만의 군대는 (재니세리)포로들과 노예에게 더욱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흑해 북쪽에서 오스만과 대립하던 러시아 이외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오스만과 영토를 두고 대적하기보단 기술발전에 더욱 집중했고 어느새 산업혁명을 거친 유럽국가들은 오스만제국이 상대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하게 됩니다. 추후 오스만제국은 영국의 보호를 받아 타국의 침공을 막아야 하는 굴욕적인 상황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오늘의 요약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오스만은 2002년 월드컵으로 인해 형제의 국가로 알려진 터키의 과거 이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에게 발해나 고구려의 안타까운 거대국가의 사연이 있다면 터키에게는 오스만 제국의 사연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서아시아의 국가들과 지리적으로 유럽보다 훨씬 가깝지만 관련 뉴스를 비롯해 관련 제품이나 식품등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국가간의 문화 차이도 있겠지만 앞서 몇 번 언급된 기술력을 기반으로 한 경제력 부분에서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역사 공부를 하다보면 오스만제국이라는 이름을 자주 듣던 터라 수년 전부터 궁금했던 차인데 오늘에서야 조금이나마 형제의 국가 '터키'의 과거 역사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수능 시험일 즈음 까지는 날씨가 따뜻했는데 슬슬 추워지는 느낌입니다. 내복과 목도리 잘 챙겨다니시고요. 환절기에 감기와 몸살 조심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