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

모피 무역 역사 요약

신대륙 발견 후에도 북아메리카는 수백 년 동안 유럽인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뉴펀들랜드 부근의 지역은 어부들이 자주 찾는 곳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어부들이 원주민과 거래를 통해 모피를 본국으로 가져오곤 했는데 새로 등장한 직업인 모피 거래 상인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스페인,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의 선박들은 연안을 순항하면서 모피를 칼이나 다른 물품으로 교환하려는 원주민을 찾아 다녔고 프랑스인들은 세인트로렌스강 부근에 감시 초소를 지어 내부로부터 이동해오는 원주민의을 봉쇄하여 북쪽의 교역을 독점화 하려 했습니다. 네덜란드 또한 이와 같은 목적으로 허드슨의 뉴암스테르담과 알바니에 감시초소를 건설했습니다. 유럽에서 흔히 사용하는 소량의 도구나 값싼 물건을 주면 비버 모피를 쉽게 얻을 수 있었고, 이 모피는 유럽에서 큰 수 있을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모피의 수요가 매우 높아졌지만 원주민들에게는 결코 반가운 소식이 아니었습니다. 유럽국가와 원주민들 사이의 관계가 서서히 악화되면서 해안지역을 장악하기 위한 전쟁이 잦아졌고 원주민들은 사냥터를 확보하고 유럽 국가와의 거래에 중개자 역할로 자리잡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높아진 수요에 따라 해안 부근에 사는 비버가 완전히 멸종되었고, 거래업자들과 사냥꾼들은 내륙 지방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프랑스는 오대호를 따라 교역소를 건설했고 나중에는 미시시피강의 하류까지 이동했습니다. 모피의 거래는 미주리강을 포함한 태평양의 연안까지 확대되었습니다. 러시아인들은 바다 수달의 모피를 찾아 다른 경로를 통해 북미에 진출했습니다.


모피의 역사를 짧게 요약해보다가 비버라는 동물이 궁금하여 네이버에서 검색을 해보니 우리가 흔히 보던 모피를 가진 수달과 비슷한 동물이 보였고, 인간의 탐욕에 의해 멸종에 가깝게 죽어간 비버들에게 안타까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동양이나 서양의 사극들을 보면 종종 직위가 높은 인물이 모피로 치장된 화려한 옷들을 보며 멋있다고 생각했던 적이 많습니다만, 그 화려한 옷 한벌을 위해 몇마리의 동물이 희생되었을지 생각해보니 끔찍합니다. 


사람이 몸을 따뜻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식물의 껍질이나 동물의 껍질을 이용해야 하는것이 맞긴 한데, 항상 인간의 지나친 욕심이 자연에게는 비극을 불러오는 것 같습니다. 지금 이 글을 적는 중 눈 앞에 3개의 귤들과 6개 이상의 귤껍질이 보입니다. 잠시후면 남은 3개의 귤 또한 맛있게 먹어치울 나 자신을 생각해보면 나 또한 이런 인간들 중 하나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를 위해 자연이 희생되는 것이 두렵다면, 대신에 내가 죽고 내가 흙이나 다른 작은 동물들의 먹이가 되야한다는 것인데 그것 또한 끔찍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역사를 배우다 보면 필요한 만큼만 먹고 욕심을 키우지 않고 마음을 비우는 것 또한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배웁니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여전히 부와 재산을 쌓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며 타인의 성공을 질투하고, 자신의 성공을 간절히 바라는 삶의 함정에서 허우적 대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