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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근대의 역사: 크림전쟁

크림전쟁이란 러시아의 남하정책으로 마찰이 생긴 러시아와 오스만투르크의 전쟁입니다. 전쟁은 구교와 그리스 정교회 사이에서 성지인 예루살렘에 대한 권한 다툼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오스만투르크로부터 나폴레옹 3세가 예루살렘의 관리권한은 얻자 러시아의 니콜라이 1세가 오스만투르크와 충돌하기 시작했고, 프랑스와 영국이 오스만투르크와 동맹을 체결하면서 결국 러시아의 남하정책은 실패했습니다.


로마 가톨릭과 그리스 정교회 사이에 성지 예루살렘의 관리권을 두고 갈등이 생기자 나폴레옹 3세는 프랑스라는 국가의 권위를 높이고자 성지의 관리권한은 로마 가톨릭에 주도록 오스만투르크를 강요했습니다. 오래 전부터 남쪽으로 영향을 확대하려던 러시아는 오스만투르크 국내의 그리스 정교회에도 권한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영국은 줄곧 러시아의 남진을 걱정했기 때문에 오스만투르크를 설득하여 러시아의 요구를 거절하게 했습니다. 러시아의 니콜라스 1세는 이를 명분으로 오스만투르크를 향해 진격해 들어왔습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동맹을 취한 후 오스만투르크를 지원하여 1854년 크림반도의 세바스토폴 요새를 공격했습니다. 연합군의 공격을 잘 막아내던 러시아는 사르디니아의 연합군 원병이 합류하자 패배하게 되었고, 세바스토플 요새는 함락되었습니다. 전쟁 중에 러시아의 니콜라스 1세가 죽게 되었고, 알렉산드르 2세가 즉위했습니다. 그는 평화를 희망하며 연합국과 파리조약을 맺었습니다. 이로써 프랑스와 나폴레옹 3세의 명성은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파리 조약은 1856년 크림전쟁을 끝내며 국가간의 입장을 정리하고, 조율한 후 약속하기 위해 진행되었습니다. 이 조약은 러시아, 오스만투르크, 사르디니아, 프랑스, 영국이 참여했습니다. 오스만투르크는 그리스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교도에게 동일한 권리를 줄 것을 약속했습니다. 전쟁에 패배한 러시아는 그리스 정교회의 성지 관리권 요구를 취소하게 되었습니다. 흑해를 중립 지역으로 하고, 경비용의 소함 이외에 다른 군함을 배치하지 않기로 약속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도나우 강 하구 지역의 땅을 오스만투르크에게 돌려주고, 도나우 강과 지류에서의 자유항해를 허락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