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세의 역사 신대륙 발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아메리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 알아보며 시작하겠습니다. 탐험가이며 지리학자인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콜럼버스와 항해에 동행한 후 그들이 발견한 땅을 인도라고 판단하기에는 기후, 식물, 사람, 문화 모든 부분에서 다르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심사숙고한 후 그들이 발견한 땅은 인도가 아닌 새로운 대륙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후일에 이 결론이 담겨 있는 문건을 독일의 지리학자 발트제뭘러가 발견했고, 베스푸치를 신대륙의 발견자라고 주장한 후 베스푸치의 이름을 따서 신대륙을 아메리카라고 부를 것을 제안하게 되었고, 세계사를 배우는 우리들은 이 때 발견된 신대륙을 아메리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대항해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사건은 콜럼버스의 아메리카대륙 발견이지만 이외에도 여러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항해가 마젤란은 에스파냐 왕의 명을 받은 후 1519년 대서양을 항해하여 남아메리카의 최남단을 돌고, 태평양을 거쳐 필리핀 제도에 도착했습니다. 남아메리카 최남단 해협의 이름이 마젤란 해협인 것도 이 때문입니다. 비록 마젤란은 원주민에게 살해당했지만, 그의 부하들은 인도양을 항해하고, 희망봉을 돌아서 마침내 본국으로 도착했습니다. 이로써 최초의 세계일주를 이뤄냈고, 더욱이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15~16세기 동안 발견된 신대륙은 유럽의 여러 나라에 걸쳐 꾸준히 영향을 주었습니다. 동양의 대표적인 특산물들이 바다를 통해서 직수입 되었고, 과거 동서를 연결하며 교역의 중개자로서 큰 수익을 거두던 이탈리아의 베니스, 제노아 등의 도시는 쇠퇴하게 되었고, 그 대신 포르투갈의 수도인 리스본이 그 역할을 이어 받았습니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이 증명되면서 종교적 인식이 차츰 깨어나게 되었습니다. 노예를 이용한 재산축적 및 노예 매매의 악습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은 동서무역과 아메리카에서 큰 영향력을 가졌으나 가혹한 식민정책에 원주민들이 독립운동을 일으켰고, 두 국가는 해외 식민지의 대부분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7세기부터는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에게 동서의 무역과 신대륙 경영의 주도권이 넘겨주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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