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십자군 전쟁 과정에서 비단, 보석, 향료 등의 동양의 물품들을 접하면서 동방과의 무역에 큰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은 동방에 대한 유럽인들의 관심을 더욱 확대시켰습니다. 하지만 오스만투르크가 지중해를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럽은 동쪽을 향한 새로운 항로를 찾기위해 노력했고, 이렇게 대항해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점차 새로운 항로들이 개척되고, 이 항로를 통해 동양과 활발히 교역하게 되었습니다. 자연히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무역의 무게추가 기울게 되었고, 유럽의 시민들의 일상 생활도 변화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동양의 물품들은 꾸준히 유입되었고, 담배, 감자, 코코아 등은 신대륙에서 수입되었습니다. 이를 토대로 상업과 공업, 그리고 금융업 또한 크게 발전했습니다. 대항해시대가 되면서 지구의 각 지역에서 각자의 특색을 가지고 살던 여러 문명이 서로 연결되는 첫 단추가 끼워졌습니다.
15~16세기 즈음 신항로와 신대륙의 발견이 시작된 대표적인 원인을 몇 가지 알아보겠습니다. 우선 십자군 원정과 몽골제국의 침략 이후로 동양과 서양을 잇는 육로교통이 발달된점,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서 유럽인의 동양에 대한 호기심을 크게 키운 점, 그리고 오스만투르크의 지중해 장악 후 동서의 교역을 막고 중간에서 막대한 세금을 부과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서양은 자연스럽게 또 다른 통로가 있는지 알아보기 시작했고 이는 인도항로의 발견으로 이어집니다. 15세기 초반 포르투갈의 왕자 엔히크는 항해에 대한 욕심이 상당했고 국가적으로 이러한 활동을 장려했습니다. 왕자 스스로도 항해를 즐기며 항해왕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항해활동은 15세기 말에 이르러 아프리카 대륙의 남단으로 돌아 인도로 향하는 인도항로를 발견하게 되고 바닷길을 통한 동서의 무역이 시작하게 됩니다.
신대륙의 발견으로는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에 많은 가치를 두곤 합니다만, 정작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는 자신이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삶을 마감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간단히 적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콜럼버스는 지동설에 의해 지구가 동그랗다는 것을 믿었고, 서쪽으로 항해를 지속하면 동양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 주장했지만 당시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에스파냐의 이사벨 1세가 그를 후원하게 되었고 1492년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같은 해 10월 과나아니에 도착함으로써 그는 신대륙을 발견했습니다. 그 후 에스파냐로 돌아간 후 몇 차례에 걸쳐 항해를 이어갔고 아메리카 대륙을 몇 번 오갔으나 그는 그곳이 아메리카 라는 신대륙임을 알지 못하고 죽게 되었습니다.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근대의 역사: 크림전쟁 (0) | 2017.02.12 |
---|---|
근세의 역사: 신대륙 발견2 (0) | 2017.02.11 |
근대의 역사: 프랑스 2월 혁명 (0) | 2017.02.09 |
근세의 역사: 러시아 (0) | 2017.02.08 |
근대의 역사: 근대시대 유럽의 동방정책 (0) | 2017.0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