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만투르크 제국이 몰락하는 과정 속에서 그 지역의 다양한 민족과 영토를 두고 강대국들 사이에서 전개된 복합적인 대립과 마찰을 세계사에서는 '동방문제'라 합니다. 발칸반도에서 한때는 최대 패권을 쥐고 있었던 오스만투르크제국이 점차 힘을 잃어가자 러시아가 발칸지역에 대한 욕심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때마침 이집트가 오스만투르크와 충돌이 생기면서 러시아는 이 문제에 개입하게 되었고, 러시아의 움직임을 눈치챈 영국과 프랑스는 이를 반대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동방문제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유럽에 있는 각 국가들은 모두들 자신의 나라의 실정에 맞는 주장을 했고, 동방문제는 오랜 기간 유럽의 정치계에서 뜨거운 감자가 되었습니다.
형식적이지만 오스만투르크제국의 지배하에 있던 이집트의 총독 무함마드 알리는 그리스 독립전쟁 때에 오스만투르크를 지원했던 공으로 크레타 섬을 획득한 후, 시리아를 추가로 요구했습니다. 오스만투르크는 이 요청을 거절했고 무함마드 알리는 군대를 일으켜 오스만 진영으로 진격했습니다. 그의 군대는 시리아를 거쳐 오스만투르크의 콘스탄티노플로 군사들이 진입하자 러시아는 오스만투르크를 돕는다는 명분을 가지고 군대를 동원했습니다. 이러한 러시아의 속셈을 간파한 영국과 프랑스 양국은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황제가 1833년 시리아와 아다나주를 이집트에 넘겨줄 것을 권했습니다. 오스만투르크는 러시아와 비밀동맹을 맺은 후 러시아 이외의 타국 함대가 다다넬스 해협으로 다니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이를 알게된 영국과 프랑스는 반대 의사를 밝혔고, 그 후 각자의 유리한 정책을 도모했습니다. 영국의 외무부장관 파머스턴은 오스만투루크를 후원해 러시아 세력의 남하를 막고, 다시 인도교통의 안전을 위해 아덴을 점령한 후 이집트를 압박했습니다. 이에 대항해 프랑스는 이집트를 후원했고, 자국의 세력을 침투시킬 명분을 가지려고 했습니다.
오스만투르크를 회유한 영국은 그들이 이집트와 싸움을 벌이게 하였으나 오스만투르크군의 규모가 너무 빈약했기 때문에 영국, 러시아,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 4개국이 런던에 모여서 회합했고, 동맹을 통해 오스만투르크를 후원하고 이집트를 억압했습니다. 이에 프랑스의 재상 티에르가 크게 분노하며 4개국과 전쟁을 치르려 했으나 프랑스의 국왕 루이 필리프가 평화를 주장하게 되어 티에르는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하고 해임되고 맙니다. 결국 고립상태에 빠진 이집트의 무함마드 알리 총독은 굴복했습니다. 그는 이집트 총독 세습권만을 갖게 되었고, 시리아를 오스만투르크에 반환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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