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남북전쟁이란 1950년도 남한과 북한의 전쟁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였는데 세계사를 조금씩 알아가면서 미국 내에서 일어난 남북전쟁이 있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미국의 남북전쟁 (American Civil War)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노예제도를 지지하던 남부의 주(州)들이 1861년 4월에 힘을 합쳐 남부연합을 결성하고 아메리카합중국으로부터 분리를 선언했습니다. 남부연합군은 분리 선언과 함께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의 찰스턴 항의 섬터요새를 포격하면서 전쟁을 개시했습니다. 결과적으로 1861년에 시작하여 1865년까지 4년 동안의 전쟁에서 남부연합군은 패했고, 그 결과 미국 전지역에서 노예제도가 폐지되었습니다.
위 포스터는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 게스티버그입니다.
남북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은 남부와 북부간의 서로다른 사정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북부의 경우 여러 주(州)는 자유인이 산업의 중심이 된 상공업이 발달하고 있었는데 이에 비해 남부의 여러 주는 여전히 노예 중심의 농업이 주된 경제활동이었기 때문에 북부의 노예제 폐지 주장에 반발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더욱이 북부는 보호무역을 선호했는데, 외국 제품에 대해서 큰 세금을 매기고 자국 내의 상공업을 보호했습니다. 남부는 자유무역을 지지했고, 외국의 제품에 적은 관세를 매겨 수입을 환영했습니다. 북부에 기반을 둔 공화당은 보호무역과 노예제 폐지를 주장했고, 남부에 기반을 둔 민주당은 자유무역과 노예제 유지를 주장하며 두 정당의 마찰이 점차 확대되었습니다. 공화당의 링컨이 1860년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남부의 주들은 연합을 결성했고, 1861년 제퍼슨 데이비스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뒤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전쟁 초기 남부연합은 연달아 승리하며 워싱턴의 목전에 도달했으나 북군 그랜트 사령관의 작전이 성공하고, 또 남부의 항구를 봉쇄하여 농산물 수출을 방해하여 전황이 뒤바뀌게 되었습니다. 전쟁에서 패배한 남부의 주들은 다시 아메리카합중국에 합류하게 되었고, 남부와 북부는 4년에 걸쳐 막대한 인명피해와 전쟁비용의 손실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공화당이 우세한 상황으로 전쟁이 끝나자 보호무역과 노예제도 폐지 등이 시행되었으나 후임 대통령 존슨과 그랜트 등은 남북의 융화에 더욱 초점을 맞췄고 국가 전체의 경영에 힘썼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자유를 추구했던 자유인들이 많이 모여 있던 북부에서 어떻게 자유무역이 아닌 보호무역을 선택했는지 의구심이 생깁니다만, 이 부분은 다음 기회에 제 지식이 채워지면 기록으로 남겨보겠습니다. 제가 추측해보기로는 해외의 제품들이 값쌀 수 있었던 이유는 인권이 무시된 노예들의 노동력으로 만들어진 결과이기 때문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노예제도 폐지를 주장하던 북부인들이 이렇게 만들어진 제품을 구입한다면 그것은 노예제를 긍정하는 것과 같다고 판단하고 보호무역을 펼쳤던 것이라고 판단됩니다. 과연 제 추측이 맞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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