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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중세의 역사: 일본과 사무라이

세계인이 봤을 때 아시아 대륙으로부터 약 161km 정도 떨어져 있는 섬나라 일본은 신비로운 국가였습니다.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있을뿐 아니라 일본인들 스스로도 고립을 선택했기에 주변 국가의 문화와 뒤섞이는 일이 적었으며 독창적인 문화를 개발했습니다. 유럽에서 중세가 시작될 즈음 칸토의 북쪽과 동쪽을 경계로 신석기 시대부터 이곳에 거주한 아이누라고 알려진 일본의 토착 민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5세기 즈음 야마토 정권이 출현했으며, 우지라는 독립 막부가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막부의 리더들은 귀족정치를 형성하고 토지와 왕권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했습니다. 530년 경 소가 막부에서는 일본 역사상 최초의 위대한 정치인인 쇼토쿠 태자가 나타납니다. 그는 앞으로의 1000년을 내다보며 일본 문화의 개혁을 이끌었습니다. 644년 권력은 후지와라 막부로 넘어갔으며, 그들은 794년부터 1185년 헤이안 시대의 대부분을 지배했습니다. 이 새로운 지도층은 645년 논을 재분배하고 농사에 대해 세금을 제정하여 국가를 현으로 구분하는 타이가 개신을 시행했습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국가의 영향력과 통치권이 미약했습니다. 


각 지방과 지역의 실질적인 권력은 과거부터 그곳에서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명문가들이 쥐고 있었습니다. 이들 명문가 간의 마찰은 오랫동안 지속되었고, 이로 인해 무사 라는 계급이 발달했습니다. 중세시대 서유럽과 마찬가지로 일본 또한 중앙의 권력이 약해지면서 지방의 귀족들이 강력하게 성장했고, 국경 지역에서는 외부 민족과의 충돌이 생기면서 무사들이 지배하는 문화가 형성되었습니다. 이들을 두고 '봉사하는 자' 라는 의미를 가진 사무라이로, 유럽에서의 기사와 비슷한 개념으로 볼 수 있습니다. 추후 12세기 말에는 군사정권이 귀족 대신에 왕의 배후를 받쳐주는 역할을 하게 되었는데, 이 군사정권의 대장을 쇼군이라 불렀습니다.


유럽의 기사도와 마찬가지로 사무라이는 무사도를 배우고 지키는 무인이었습니다. 무사도의 근본은 군주를 향한 충성이었고, 무사는 군주에게 지도와 보호를 기대했습니다. 무사는 그 대신 군주의 명령에 복종했고, 군주를 대신해서 자신의 생명을 내놓을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조상과 역사를 중요하게 여기며 가족의 전통을 잇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본보기가 되도록 행동해야 했으며, 신념이 변하지 않아야 했습니다. 살기를 바라는 사무라이는 용감하게 싸우지 못한다고 판단했기에 전쟁 시에는 언제나 죽기를 각오했습니다.


일본은 1274년과 1281년 몽골족의 두차례 침입에 위험이 있었지만 큰 피해를 입진 않았습니다. 몽골의 두 번째 칩입 시 폭우가 몽골 함대를 격파한 이후 일본에서는 이 폭우를 카마카지라 하여 '신의 바람' 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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