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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근세의 역사: 떠오르는 프랑스1

근세시대의 부상하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인물인 루이 14세 부터 알아보겠습니다. 1643년 프랑스에서는 루이 14세가 5세의 나이로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72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왕위에 있었습니다. 신하들의 엄숙한 접견을 받았고, 화려한 궁궐 생활을 지속했습니다. 파리 외곽에 도시 하나의 크기와 견줄 정도 규모의 베르사유 궁전을 지었습니다. 루이 14세는 자기 자신을 전 유럽의 대표로 생각하고 있었으며, 사람들은 그를 태양왕이라 불렀습니다. 중앙집권을 꾸준히 추진하여 먼 지방에 마지막 까지 남아 있던 봉건제도의 잔재를 정리하고, 중앙에서 내려오는 지시가 지방까지 잘 전달되도록 했습니다. 물론 중앙집권을 방해했던 지방의 귀족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루이 14세는 이런 힘 있는 귀족들을 베르사유 궁전으로 불러 사치스러운 생활에 익숙하게 했고, 서서히 이들 세력을 흡수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오랫동안 유럽의 절대군주로서 남게 되었습니다.


추기경이면서 공작인 리슐리외는 루이 13세에 의해 재상이 된 후 왕권신장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귀족과 제후의 세력을 통제하며 왕권 안정화에 기여했으며, 위그노파를 공격하여 프랑스의 통일에 기여했습니다. 군대의 강화를 위해 군비를 정돈하고 함대를 편성하여 영국에 대항했습니다. 더욱이 문예와 과학을 장려하여 프랑스 아카데미를 창립했습니다. 루이 14세가 왕이 되자 마자랭은 리슐리의 뒤를 이어 재상이 되었고, 부르봉 왕조의 절대주의 완성에 기여했습니다. 내정과 외교에서 큰 성과를 거두며 프랑스의 국력을 크게 높혔습니다. 30년 전쟁에 실리를 취하는 방식으로 개입하여, 각국의 이해관계를 중재했습니다. 1659년 영국과 동맹하여 에스파냐를 압박하고 피레네 조약을 승인하도록 했습니다. 다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금을 무겁게 책정하여 거둬들이는 등 리슐리외와 마자랭의 정책을 발판삼아 프랑스는 절대주의적 중앙집권의 기초를 확보했습니다.


루이 14세는 프랑스의 부르봉 왕조의 왕이면서, 동시에 절대왕정의 대표적인 전제군주라 할 수 있습니다. 파리고등법원을 격하시키고, 재상제를 폐지했으며 베르사유 궁전을 통해 유럽 문화와 권력의 중심이 되게 했습니다. 왕의 재위 72년간 프랑스는 크게 부강해졌고, 문학과 예술 또한 큰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부르봉 왕조는 최고의 전성시대를 이끌었고, 이는 루이 14세 시대라고 불리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