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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중세의 역사: 유럽의 해전과 선박

500년 즈음 북유럽을 차지하고 있던 게르만족은 여러 종류의 선박을 개발했습니다. 교역선의 경우 선체가 넓고 배가 물에 잠기는 깊이가 깊었습니다. 초기에는 하나의 돛대만 설치했지만 이후에 선박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여러 개의 돛대를 사용했습니다. 이러한 배를 노르웨이 사람들은 나르라고 불렀습니다. 바이킹족과 앵글로색슨족은 이 나르를 교역과 탐험에 이용했습니다. 중세시대 말기에 들어서 나르는 주력 상선인 콕으로 발전합니다. 물에 잠기는 깊이가 더욱 깊어 항해하기 편리해졌고 많은 화물을 실을 수도 있었습니다. 


중세시대 북유럽의 해전은 바다 위에서 벌어지는 육지의 전투와 비슷한 형태였습니다. 배의 선수와 선미에 망루를 세워 적의 공격을 막아내고, 궁사들이 발사용 갑판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군함이 상대 군함에 접근하면 선원들은 활을 통해 적함과 적병을 공격했습니다. 군함들은 서로 뒤얽혔고, 백병전을 통해 승부를 지었습니다. 대포가 14세기에 등장할 때까지 북유럽의 해군에는 적의 함대에게 큰 피해를 입히거나 침몰시킬 강력한 무기가 없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1340년 슬러이스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콕 군함 400여척이 해전을 치렀는데 이 또한 서로 얽혀 활을 쏘는 백병전이었습니다.


바이킹족의 해전에 경우 대형선에서 싸울 때 백병전을 하기 쉽도록 보트를 서로 묶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8,9세기 즈음 대형 보트에 돛대가 설치되었던 것으로 추측되며, 그 이전에는 노를 사용해 항해했습니다. 돛대 설치로 인해 항해 거리를 증가시킬 수 있었고, 이는 9세기 경 바이킹족의 침략에 발판에 마련된 셈이었습니다.


선박의 발전 또한 문명의 만남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십자군 전쟁으로 인해 북유럽의 선박이 지중해로 유입되었고, 남유럽과 북유럽의 선원이나 선박기술자들 또한 접촉할 기회가 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남부 유럽인들은 콕의 특징인 대형 선체와 정사각형 돛대를 받아들였고, 북부 유럽인들은 나침반과 선미의 키 그리고 삼각돛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중세시대에 가장 뛰어난 선박기술은 중국인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정크라는 선박은 수세기 동안 유럽의 그 어떤 선박보다 우수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화물의 적재공간이 넓고 항해능력 또한 탁월했습니다. 중국의 해군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1405년 중국의 해군제독 정화가 2만5천명이 탈 수 있는 거대 군함을 이용해서 태평양과 인도양을 탐험했던 기록이 있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 까지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현대 무역의 미래는 좀 불투명하게 보는 편입니다. 어릴 때 통역관에 대한 꿈을 잠시 가졌던 적에 무역에 대해서도 관심이 조금 있긴 했습니다. 지금은 오직 새로운 기술만 탐하고 추구하는 입장이라서, 되돌아보면 왜 그런 생각을 했나 싶습니다. 과거 역사를 통해 현대를 되돌아보고 깨우치기도 합니다만, 이제 앞으로는 정말 어떤 물건을 운송하는 비율이 많이 줄어들고, 그 대신 미디어나 소프트웨어가 인터넷을 통해서 빠르게 전송되는 형태로 시대가 변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점차 육체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의 수도 줄어들고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의 수도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 같습니다. 아마 VR과 인공지능을 탑제한 무인자동차가 대중화 되면서 이러한 인류의 행동변화는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공지능의 연구와 함께 생명공학과 뇌과학 등 다양한 분야가 함께 발전하고 있는 속도를 보면 21세기가 끝나기 전에 아마도 인간의 5감 중 3~4가지 감각은 기술을 통해 가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상황에 봉착할 거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