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기나긴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재위의 자리에 머물렀던 황제는 강희제입니다. 청나라의 4대 황제로서 백성들에게 존경받았으나 만주지역 대부분의 영주들은 그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강희제는 신유교주의의 신봉자였지만 쇄국정책은 취하지 않고 항구를 개방해 다른 국가들과의 교역이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더욱이 예수회 선교사를 비롯한 외국 선교사들을 환영했습니다. 61년이라는 통치 기간 동안 강희제는 몽골, 타이완, 티베트 지역까지 영토를 확장했으며 동시에 국내 정치에도 힘을 기울여 많은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강희제는 1654년 5월4일에 태어났습니다만, 1662년 아버지인 순치제가 사망하게 되어 7세의 나이로 황제라는 무거운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순치제는 어린 아들을 생각해 4명의 섭정을 지명했고 그들에게 국정 운영의 많은 부분을 맡겼습니다. 하지만 권력의 맛을 본 섭정들은 서로 대립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한 명은 사망, 한 명은 피살되었고, 다른 한 명은 심지어 강희제를 몰아내고 자신이 청나라의 황제가 되려고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혼란상을 몸소 경험한 강희제는 1669년 10대의 나이에 직접 통치를 시작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강희제는 백성들을 위한 통치를 실행에 옮기기 시작합니다. 그는 자기 자신의 조그마한 행동과 판단이 청이라는 거대한 국가의 백성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잘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과거의 명나라를 그리워하는 백성들의 민심을 돌리기 위해 심사숙고 했습니다. 강희제는 몇 명의 측근들만 대동하여 남부 지역을 순회하면서 각 지방의 현안을 파악하며 지방의 영주들에게 적절한 지시를 내렸습니다.
1670년에는 유교정신에 기초한 성론 16조 "부모와 조상에 대한 관용, 공경, 검약, 근면, 세금의 중요성을 담고 있는 성유광훈을 포고했습니다. 이를 통해 만주 혈통이라는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며 백성들에게 인정받았고, 진정한 중국의 황제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강희제는 1722년 사망에 이르기 까지 많은 치적을 남겼고, 청나라 최고의 황제이면서 동시에 중국 역사를 통틀어 손꼽히는 위대한 지도자로 기록될 수 있었습니다. 네르친스크 조약을 통해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고, 몽골 외곽과 티베트를 중국에 편입시켰습니다. 굶주린 중국의 북부지방 백성들에게 쌀을 운송하기 용이하도록 대운하 정비를 명령했고, 황하강의 범람을 막기 위해 준설을 시행했습니다. 또한 세금을 줄이고 도금고서집성과 강희자전 등의 주요 저서를 편찬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긴 인물입니다.
위대한 왕이나 황제에 대한 역사적 기록을 보면 정말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 그 위대한 인물이 어떻게 주변인물과 "소통"하고, "판단"하고, "결정" 내렸는지 여러 다른 왕이나 황제들과 비교해보고 싶은 욕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2016년 현재는 타임머신이 존재하지도 않고, 더욱이 그런일이 일어난다면 미래가 바뀔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아마도 이 욕심은 아무리 기술이 발달되어도 이뤄질 수 없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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