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근대의 역사: 이탈리아 통일

쯔구 2017. 2. 14. 06:12

중세 이후 이탈리아는 많은 수의 소국으로 분열되었습니다. 그리고 19세기에 들어와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운동의 영향으로 프랑스 7월혁명, 2월혁명이 일어났고 그 여파에 동참하여 이탈리아 또한 통일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통일운동은 매번 오스트리아의 방해를 받곤 했습니다.


사르디니아의 왕 에마누엘레 2세는 오스트리아의 영향에서 벗어나서 이탈리아의 통일을 이룩하려는 꿈을 품고 카밀로 디 카보우르를 수상으로 임명한 후 내정을 다졌습니다. 그리고 무력충돌을 대비해 군사적 준비 또한 철저히 진행했습니다. 어느 정도 준비가 갖춰지자 사르디니아는 크림 전쟁에 참여하여 영국 그리고 프랑스의 환심을 샀습니다. 그 후 나폴레옹 3세와의 밀약을 맺은 후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통일을 향한 이 전쟁은 1859~1860년까지 이어졌습니다. 사르디니아와 프랑스의 동맹군은 마젠타 전투, 솔페리노 전투에서 연이어 오스트리아에게 승리했습니다. 하지만 나폴레옹 3세는 사르디니아의 영향력이 생각보다 커진데다가 궁지에 몰린 오스트리아가 프로이센과 동맹할 가능성에 두려움을 느껴 급격히 태도를 바꿨고 비밀리에 오스트리아와 휴전 조약을 맺었습니다. 이 조약의 사항들은 이후 사르디니아와 오스트리아 사이에서 맺어진 취리히 조약에 의해 많은 부분이 파기됩니다.


취리히 조약을 통해 에마누엘레 2세의 이탈리아 통일운동은 잠시 주춤했으나, 통일운동의 지도자 마치니라는 인물이 등장하고, 수상인 카보우르 등이 노력하여 이탈리아는 사보이와 니스를 프랑스에 넘겨주는 대신에 중부 이탈리아의 여러 소국들을 합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탈리아 통일운동의 영웅으로 불리는 가리발디가 시칠리아와 나폴리를 공격하여 두 왕국을 사르디니아 왕에게 할양했습니다. 그러므로 베니치아와 로마 교황령을 제외한 이탈리아의 반도 통일이 이루어졌습니다. 1865년 에마누엘레 2세는 토리노에 의회를 통해 이탈리아 왕국의 성립을 선언하면서 왕위에 올랐습니다. 이후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의 전쟁 때 프로이센을 도와 베네치아를 얻고, 1871년 독일과 프랑스의 전쟁 때 프랑스의 군대가 로마를 비운 틈을 이용하여 교황령을 몰수하여 숙원인 이탈리아 통일을 완전히 이룬 후 로마를 수도로 삼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