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근세의 역사: 러시아

쯔구 2017. 2. 8. 06:08

중세의 루시 지역은 862년 노르만인 류리크가 노브고로트의 공작이 된 후 그 일족이 동쪽의 슬라브인의 지역에 영향을 펼쳐나가는 과정에서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키예프 루시의 중심지역은 현재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키예프이고, 현재 러시아의 중심에 위치한 북동 루시는 변두리에 위치했었고, 모스크바 지역도 아직 역사에 등장하기 이전이었습니다. 9세기 키예프 공국은 동로마 제국으로부터 동방 정교회와 비잔틴 문화를 받아들여 특징 있는 문화를 형성했지만, 몽골의 13세기 초 정복활동으로 인해 킵차크한국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키예프 루시의 변방으로 취급받던 모스크바 대공국은 몽골의 지배 속에서 루시가 내야 할 공납물을 정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고, 점차 그 영향을 키워 15세기에는 킴차크한국의 지배를 벗어났고 루시의 통일을 이루었습니다. 그 후 모스카바 대공국은 이반3세 때에 처음으로 차르의 칭호를 사용한 뒤, 표트르 1세 때에 러시아 제국으로 발전했습니다.


러시아의 근세 대표적인 인물을 찾자면 표트르 대제를 들 수 있습니다. 인물 중심으로 근세 러시아를 재정리 해보겠습니다. 러시아 연대기의 기록에 따르면 류리크 라는 노브고로트의 지배자는 9세기경 러시아를 건국했으며 노르만족 출신이라고 전해집니다. 그는 862년 노보고로트의 권력을 장악했고, 그의 자손들이 1598년까지 러시아를 지배했는데 러시아는 칭기스칸의 손자인 바투가 세운 킵차크한국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15세기말 러시아는 모스크바 대공 이반 3세에 이르러 몽고의 지배로 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이반 4세 때부터 영토를 확장하며 시베리아 개척의 시초를 열었습니다. 1613년 이반4세의 죽음 이후 미하일 로마노프가 내란을 진압하며 왕위에 오르게 되면서 로마노프 왕조가 시작되었습니다. 로마노프 왕가의 차르들이 가진 권력은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표트르 대제의 등장과 함께 모스크바 러시아는 러시아 제국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미하일의 손자 표트르 대제가 즉위했던 1682년 당시의 러시아는 대륙의 북방에 치우쳐 있어 유럽 국가들의 성장에 영향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다방면에서 서유럽 국가들에 비해 뒤쳐져 있었습니다. 표트르 대제는 이 간극을 좁히려고 스스로 유럽의 각국을 둘러보며 공부했고, 새 문물을 수입하며 외교와 내정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점차 러시아는 신흥 강국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귀족의 자제들이 유럽의 선진국에서 배울 수 있도록 했고 외국의 기술자와 군인 등을 데려와 다양한 지식과 기술, 군사전술을 전수하게 겠습니다. 상업과 공업의 발전을 위해 도로를 개편하고 광산을 개발했으며, 합리적으로 조세제도를 통일하고 유통되던 화폐를 보완하여 거래의 편의성을 높혔습니다. 오스만투르크를 향해 진격하여 아조프 해 근방을 점령했고, 북방전쟁을 통해 오랫동안 잃었던 발트연안 지방을 수복했습니다. 그 후 시베리아 진출 그리고 1689년 청나라와의 네르친스크 조약으로 국경을 정비합니다. 이어 캄차카 반도와 알래스카 지방까지 영역을 확장했습니다. 


이번에는 러시아와 스웨덴이 발트 해의 지배권을 놓고 다퉜던 북방전쟁을 알아보겠습니다. 스웨덴의 세력확장이 발트 해 연안에 까지 영향을 미치자 이에 러시아는 덴마크, 작센 등과 북방동맹을 맺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서 동맹은 붕괴되었다가 다시 1709년에 재구성되었습니다. 이 전쟁에는 많은 국가들이 엮여 있었는데 러시아 진영에는 잉글랜드, 네덜란드, 프로이센, 하노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 등이 있었고, 스웨덴 진영에는 오스만투르크 제국, 우크라이나가 있었습니다. 1721년 전쟁은 스웨덴측의 패배로 끝났고 이 전쟁을 통해 러시아가 발트 해의 지배자이면서 동시에 유럽의 주요국가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러시아는 니스타드 조약을 통해 스웨덴으로부터 에스토니아, 인그리아, 리보니아 등 발트 해 연안 지역을 얻었고, 그 대가로 200만 탈레를 지불하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