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의 역사: 아프리카 대륙의 분할
1880년대에서 1차 세계대전이 있던 1914년까지 유럽 열강의 침략으로 아프리카가 식민지로 분할된 것을 아프리카 분할이라 불립니다. 유럽의 열강들은 세계 곳곳으로 식민지 쟁탈을 위해 뻗어 나갔습니다. 당시 아프리카 또한 열강의 훌륭한 타겟이 되었습니다. 베를린 회의(1884년-1885년)는 프랑스, 영국, 독일의 아프리카 분할 그리고 벨기에의 콩고 침략을 정당화 했습니다.
근대시대에 다다르기 까지 아프리카 대륙의 대부분은 베일에 싸여 있었고, 검은대륙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영국의 리빙스턴, 스탠리 등의 탐험가가 활동하면서 아프리카 내부에 대한 정보가 점차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유럽의 열강은 앞다퉈 아프리카를 분할하기 시작했고 19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몇 개의 소수 독립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땅을 보호령 또는 식민지로서 확보하게 됩니다. 이집트 총독은 프랑스인 페르디낭 드레셉스에게 운하 개착 특허권과 수에즈지협 조차권을 주었고 교통에 큰 진보를 이루었으나 재정이 크게 고갈되었고 '수에즈 운하회사'의 주권 대략 17만주를 영국에 팔았습니다. 이 틈을 놓치지 않은 영국은 프랑스와 함께 이집트 내부로 깊숙히 들어와 간섭을 시작했습니다. 1898년 이집트 독립의 대표적 인물 아라비 파샤가 군사를 일으켰지만 영국군에 의해 진압되었습니다. 그 후 이집트는 오스만 투르크의 보호령이었으나 그것은 형식적인 부분이었고 실제로는 영국의 보호국이 되었습니다. 빈 회의의 결과로 영국은 남아프리카의 케이프를 식민지로 획득했습니다. 오래 전부터 이 지역에 정착해 세력을 유지하던 네덜란드계인들과 그들의 후손인 보어인은 영국의 지배를 피해서 북쪽으로 이동했고 오렌지 자유국과 트랜스발 공화국 등의 소국을 세워서 독립을 쟁취하려고 했습니다. 트랜스발에서 금광이 발견되고, 오렌지에서 다이아몬드가 발견되면서 영국은 이 자원을 탐내기 시작했고 곧 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초기에는 트랜스발 공화국과 오렌지 자유국이 동맹을 통해 영국군을 잘 막아냈습니다. 하지만 앞도적인 군사력 차이로 마침내 항복하게 되었습니다. 베레니깅 평화조약을 통해 트랜스발과 오렌지 두 국가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그 후 영국은 점차 무어인들을 회유하면서 남아프리카를 통일했고 1910년 남아프리카연방을 설립했습니다.
프랑스는 1830년 알제리를 점령한 후 식민지로 삼았고,1878년 베를린 회사 를 통해 튀니지를 보호국으로 하여 사하라 사막의 이남 일부 지방을 얻고, 마다가스카르 섬을 획득했습니다. 1898년 아프리카 횡단정책을 수립한 후 나일강 상류의 파쇼다를 점령했으나 영국의 항의에 의해 포기하였습니다. 프랑스는 이전부터 모로코의 보호권을 얻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독일의 견제로 일을 진척시키지 못했는데 1906년 알제시라스 협약으로 프랑스의 우월권이 인정되었습니다. 1911년 모로코에서 내란이 발생했고 모로코의 요청에 따라 프랑스가 군사를 움직였으나 독일 또한 군함을 파견하자 양국의 관계가 험악한 관계로 이어졌습니다. 이에 독일은 프랑스령 콩고의 일부를 얻었고, 프랑스의 모로코 보호권에 승인했습니다. 독일은 아프리카의 동부와 서남부, 토고, 카메룬 등을 점령하고 복속시켰으나 1차 세계대전 후 이 영토를 모두 잃었습니다. 이탈리아는 소말리아, 홍해연안의 일부지방을 차지하고 트리폴리 등을 점유했습니다. 벨기에는 공고강 유역에 콩고 자유국을 세웠으나 추후 본국과 병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