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근대의 역사: 나폴레옹 1세

쯔구 2017. 2. 2. 06:09

프랑스령의 코르시카 섬 출신으로 가난함 속에서 군사학교를 졸업한 나폴레옹 1세는 이후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며 프랑스의 영웅으로 성장했지만, 러시아 원정의 실패로 인해 엘바섬에 유배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엘바섬을 탈출한 후 프랑스 황제가 됨으로써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그의 삶을 보여주었습니다.


프로이센은 제1차 대프랑스 동맹이 흩어진 후 중립을 유지했으나 라인동맹의 결성으로 나폴레옹의 영향이 중부 독일까지 확대되자 영국, 스웨덴, 러시아 등 제4차 대프랑스 동맹을 1806년 7월에 결성한 후 10월9일 프랑스에 선전포고 했습니다. 프로이센의 군대는 예나-아우어슈테트 전투에서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고, 나폴레옹은 기세를 몰아서 프로이센의 수도 베를린을 점령했습니다. 더욱이 1807년 프리드란트 전투에서 프로이센과 러시아의 동맹군을 격파하고 양국과 틸지트 조약을 맺었습니다. 우선 프로이센은 국토의 대부분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상비군을 42,000명으로 제한받고, 배상금 1억2천프랑을 프랑스에 지불했습니다. 러시아에는 프랑스가 러시아를 제외한 유럽을 통치하는 것을 지지할 것 등 이외에도 이 조약에서는 다양한 내용에 합의되었습니다. 


유럽 대부분의 국가는 나폴레옹의 영향권에 들어왔으나 영국은 막강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프랑스에 대항하고 있었습니다. 나폴레옹은 이에 대륙봉쇄령을 통해 유럽대륙의 국가들이 영국과의 무역을 금지하도록 했습니다. 포르투갈이 대륙봉쇄령을 무시하고 영국과 무역활동을 지속하자 이를 이유로 포르투갈을 점령했습니다. 그 후 에스파냐의 내란을 진압했고, 1808년 반란을 시도한 오스트리아를 정벌했습니다. 1812년 나폴레옹은 러시아가 대륙봉쇄령을 무시하고 영국과 무역한 것에 대한 응징으로 약 50만 군사를 이끌고 러시아 원정을 떠났습니다. 보로디노에서 러시아의 군대를 격파한 후 모스크바를 손쉽게 점령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군은 묵을 공간이 부족했고, 식량또한 부족했습니다. 결국 군대를 되돌릴 수 밖에 없었고, 군대의 귀환길에 러시아군의 습격과 극심한 추위의 겨울기후로 인해 많은 군사를 잃고난 후에서야 본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에 실패하자 1813년 러시아, 오스트리아, 스웨덴, 프로이센 등의 국가는 제4차 대프랑스 동맹을 결성했고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프랑스군에게 대승을 거뒀습니다. 동맹군은 1814년 프랑스 파리를 함락시킨 후 나폴레옹 1세를 엘바로 섬에 유배보냈습니다. 루이16세의 동생 루이 18세가 왕위에 올라 동맹국들과 제1차 파리조약을 맺었고 프랑스는 예전의 국경으로 돌아가며 침략지 전부를 반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