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중세의 역사: 흑사병(페스트)

쯔구 2017. 1. 22. 06:01

이번에는 봉건제도의 몰락을 불러온 흑사병(페스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4세기 중반 퍼지기 시작한 흑사병은 전 유럽을 공포로 몰아 넣었습니다. 이 전염병은 중앙 아시아에서 발생한 후 서쪽으로 옮겨갔고, 1346년 흑해지역에서 나타났습니다. 그 다음 남서쪽인 지중해로 확산대었고, 북대서양 연안으로 올라가 발트해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 후 스페인과 포르투갈, 잉글랜드와 아일랜드, 스웨덴과 발트제국, 러시아에서도 흑사병이 발생했습니다. 지금을 기준으로 흑사병에 의한 사망자를 계산해보면 유럽, 중동, 북아프리카, 인도의 3분의1에서 2분의1 정도가 사망했습니다. 유럽 중세시대의 막을 내리게 한 흑사병은 이후에도 1799년 나폴레옹의 군사들에게도 전염되었고, 19세기 말에도 중국에서 엄청난 인명피해를 낳았습니다. 


흑사병은 지금까지도 존재하는 림프절 페스트로 위험한 박테리아에 감염되는 것입니다. 이 박테리아의 전염 경로는 흑사병에 감염된 쥐의 피를 빨아먹는 벼룩의 침이었습니다. 흑사병으로 쥐가 죽으면 벼룩은 사람에게 옮아갔고, 박테리아 또한 사람의 혈관을 통해 전염되었습니다. 감염된 사람은 혼수 상태에 빠졌고, 고열에 시달리면서 대부분 이틀 내에 죽었으며 소수의 사람들은 병을 이겨내고 살아남기도 했습니다. 흑사병이라는 이름은 피와 고름이 나오는 검은색 종기가 나타나는 것에 유래했습니다. 흑사병은 봉건제도의 몰락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흑사병이 휩쓸고 난 도시는 인구 수가 격감했고, 영주와 농민의 사회적 관계도 와해되었습니다. 우선 흑사병으로 인해 일을 할 수 있는 노동자의 수가 급속도로 줄면서 임금이 급상승 했습니다. 많은 일꾼을 잃은 토지의 지주들이 파산하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재미난 점은 흑사병에 걸리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이전에 비해 상당한 수준의 부를 할당받을 수 있었습니다. 농민들은 더 나은 조건은 제시하는 일터로 이동했고, 장기적으로 전 유럽사회가 장원경제에서 벗어나는 변화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다행히도 대한민국의 역사에는 흑사병과는 큰 인연이 없었는지 기록된 사실이 잘 없습니다. 하지만 인연이 꼭 없다고만 볼 수 없는게 흑사병을 영문표기를 하면 플레이그(plague)가 됩니다. 이 플레이그는 2000년대 초 대한민국의 국민게임으로 불리던 스타크래프트의 저그유닛 디파일러의 기능 중 하나로 유명합니다. 흑사병에 대한 내용을 정리하다가 plague 라는 영문을 우연히 보면서 역시 사람 사는 세상은 비슷비슷 하구나 하며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다만 게임상에서 플레이그가 기계에도 전염되는 부분은 아이러니 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