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역사: 중세시대 포로와 몸값
근대와 마찬가지로 중세에서도 전쟁이나 전투를 승리로 이끈 후 얻게되는 가장 큰 보상은 명예작위와 영지를 하사받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승리를 한 후 얻는 직접적인 보상은 적의 몸을 수색해서 얻는 전리품, 마을과 성을 함락시킨 후 얻는 약탈품, 수 많은 전사자들의 무기와 갑옷, 그리고 오늘의 주제인 "포로"를 들 수 있겠습니다.
중세시대에 포로로 잡힌 기사들은 목숨을 건지기 위해서 몸값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가장 높았던 역사적 몸값의 사례는 십자군 원정에서 돌아오다가 포로로 잡힌 영국의 리처드 1세를 구하기 위해 독일의 왕자에게 지불한 몸값입니다. 현재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이때의 몸값은 대략 미화 2,000만달러가 넘습니다.
적군을 포로로 잡아둔다는 것은 그만큼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포로를 잡아두기 위한 공간과 최소한의 식량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영국군은 아쟁쿠르에서 다수의 프랑스 기사를 포로로 잡았고 이들의 몸값을 받아내기 위해 후방에 억류해 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과 달리 전투 중 프랑스군이 그들을 구하기 위해 영국군의 후방을 급습했고, 이에 헨리 5세는 몹시 놀라 몸값을 포기하고 포로로 잡혀 있는 프랑스 기사들을 처형하라 명령했습니다.
당시 전령관이라는 직책이 있었는데 포로를 잡은 기사와 포로로 잡힌 자를 기록하여 몸값을 받게 되면 그 몸값을 전달해주었습니다. 전령관은 포로의 가족에게 해당 사실을 알리고, 상호간에 몸값을 흥정 또는 조율하며 몸값을 받은 뒤 포로를 석방했습니다. 몸값을 받고 포로를 석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것을 보면 비록 적대관계라 할지라도 인간미가 느껴질 수 있는 부분입니다만, 안타까운 사실을 더하자면 몸값이 거의 없는 하급 포로들의 경우 포로에게 제공할 공간과 식사, 그리고 그들을 관리할 보초에 들어갈 수고를 아끼기 위해 바로 처형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인간도 동물과 같이 상대방의 가치를 판단하고 그 판단에 따라 행동하곤 합니다. 제 개인의 삶도 그렇고 아마 앞으로 남은 삶도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에게 득이되면 가까이 하려하고, 실이 되면 멀리하려는 동물적 본능이 식물에도 있는지 알아보고 싶어졌습니다. 일전에 TED 강연에서 식물들 끼리 소통하고 영양소를 나눠먹기도 한다라는 내용을 봤던 기억이 나는데, 인류가 동물, 그리고 식물과도 소통할 수 있는 날이 찾아온다면 인간이 창조고, 지식을 얻고 진보하게된 이유에 근접할 수도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애초부터 그런 이유 자체가 없었을 수도 있겠지만, 웬지 그런 것을 기대하는 것이 인간의 호기심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