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역사적인 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

쯔구 2016. 12. 15. 06:00

전란 중에 태어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부모는 각각 17세, 15세에 불과했습니다. 출생한 후 2년이 되기도 전에 어머니는 쫓겨났고 그때부터 이에야스는 어머니 없이 마츠다이라는 가문의 전투에 휘말리게 됩니다. 이에야스가 어진시절에 마츠다이라 가문이 와해되는 일이 발생하는데, 가문의 절반은 이마가와 가문에 협력하고자 했고, 나머지 절반은 오다 가문과 손을 잡으려고 했습니다. 1548년, 오다 가문이 영지를 침범하면서 이에야스의 아버지는 도움을 청하기 위해 이마가와 가문으로 향했습니다.


당시 이마가와 가문의 수장은 지원군을 보내는 대신에 한 가지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그 조건은 당시 6세에 불과했던 이에야스를 볼모로 잡아두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야스의 아버지는 조건에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이에야스를 인도하기 전에 오다 가문 쪽에서 협약을 알아채고 이에야스를 납치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오다 가문은 자신들의 숙적인 이마가와 가문과의 관계를 끊지 않으면 이에야스를 죽이겠다고 마츠다이라 가문을 협박했습니다. 하지만 이에야스의 아버지는 이마가와 가문의 신임을 얻기 위해 협박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이에야스는 납치된 채로 3년 동안 어쩔 수 없이 오다 가문에서 머물게 되었고, 그러던 어느 날 이마가와 가문이 오다 가문의 성을 포위하면서 공격을 멈추는 조건으로 이에야스는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어릴 때부터 이에야스는 남들과는 다른 험한 일을 겪으며 자라났습니다. 1567년 이에야스는 아명을 버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이름을 바꾸면서 자신이 왕족인 미나모토 가문의 후손이라고 주장했습니다만, 이에 대한 증거는 없었습니다. 이 개명 사건과 함께 이에야스는 자신의 야심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는 동시에 자신의 손으로 미래를 개척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당시의 이에야스는 이미 수 많은 전투를 경험한 용맹하고 간교한 장수로서 이름이 알려진 상태였습니다. 자신에게 유리하다면 동맹과 가문을 바꾸는 행위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우선 오다 노부나가를 비롯한 강력한 세력들과 동맹을 이용해 자신의 영토를 정비하고 영향력을 확대했습니다. 그다음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손잡아 일본 전역의 영주들을 하나로 연합했으나 그것은 허울에 불과했습니다.


1590년대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키지만 이에야스는 영리하게 뒤로 물러나 자신의 영지를 가꾸고 군대를 양성하는 일에만 주력했습니다. 다른 장군들이 전장에서 부하장수들과 군사들을 잃는 동안 이에야스는 적당한 명분으로 자신의 위치를 유지하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1598년 히데요시가 사망하고, 이에야스가 수면위로 등장하자, 그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던 모든 세력의 연합(서군)이 이에야스의 영지를 공격하지만, 그들에게는 이미 이에야스의 연합(동군)을 제합할 힘이 없었습니다. 세키가하라 전투(1598~1600년)를 통해 이에야스와 그의 연합 세력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위업을 잇는다는 명분을 가지고 미쓰나리 연합을 물리쳤습니다. 1600년 10월 전투에서 승리한 이에야스는 적들을 처형했고, 휘하 장수들에게 포상을 내렸습니다. 


그로부터 2년 뒤 이에야스는 쇼균이 되어 도쿠가와 막부의 시대를 열었고, 에도 시대라고도 불리는 이 군부 독재 정권은 1868년까지 이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