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는 중세의 군대에 대해 알아봤습니다만, 이번에는 좀 더 자세히 군대조직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중세시대의 군대 조직은 근대국가들의 군대조직과 비교해보면 비교적 간단한 형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상비군 개념의 연대, 사단, 군단은 중세시대가 끝난 후 나타났습니다.
중세시대(봉건시대)에 군대의 소집명령이 떨어지면 각 지역의 봉신들이 필요한 기사와 궁사, 보병을 이끌고 약속된 장소에 모였습니다. 군사들은 집결장소에 모인 후 역할에 따라 재결집 되었습니다. 궁사와 보병이 짝을 이루듯, 기사와 기사의 종자가 짝을 이루어 움직였습니다. 특별한 군사들 예를들면 기술자와 공성포병 같은 군사는 주로 규모가 있는 전쟁을 치를 때에만 고용되었습니다.
중세시대 말기에 용병은 존경받는 직업이었습니다. 전사를 중개해주는 직업도 있었는데 규모가 커지는 경우 용병회사를 설립한 후 영주나 도시에 긴급히 싸울 수 있는 유능한 병력을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다양한 무기를 사용하는 용병회사도 있었고, 한 가지 무기만 사용하는 용병회사도 있었습니다. 전쟁에서 종종 창의 수로 병력의 수를 판단하곤 했는데, 100개의 창을 가진 용병회사의 경우 약 300~400명의 병력을 보유한다는 의미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현대사회에 소속계약 없이 자유계약으로 일한다는 의미의 "프리랜서"라는 단어는 이때부터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1439년 프랑스의 찰스 7세는 로열 오디넌스 컴퍼니라는 용병회사를 만들고 많은 기사나 보병을 키워냈습니다. 용병회사별로 군사의 수가 정해져 있고, 국왕이 무기와 값옷을 지정하였습니다. 이 형태가 진화하여 서양의 근대시대 상비군이 되었습니다. 봉건시대의 군대 명령은 비교적 수평적이었습니다. 전투 시 전략의 사용이 낮은 편이었기 때문에 지휘관을 보좌하며 군사들에게 명령을 전달하는 부관이 필요없었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개인적으로 프리랜서라는 단어를 중세시대의 용병에게서 발견할 줄은 예상도 못했습니다. 현재 전 세계적인 큰 전쟁은 2차 세계대전 이후로 발생하고 있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 대한민국은 1950년 남북전쟁으로 저의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는 큰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그리고 아직 아프리카나 중동지역의 전쟁과 전투는 이어지고 있다고 종종 뉴스를 통해 접합니다.
냉전시대를 지나 인류가 경제활동을 통한 경쟁을 시작했고, 많은 나라들이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경쟁의 구도를 띄고 있지만, IT를 주축으로 한 공유경제가 대중화되고 지식을 나누는 것이 사회적 미덕으로 인식되면서 인류가 조금씩 진화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앞으로 인공지능과 함께할 인류가 터미네이터나 매트릭스 같은 미래를 가속화 시킨다고 볼 수 도 있습니다만, 모든것을 무(無)로 만들며 서로간에 상처와 복수만을 낳았던 과거의 전쟁들보다는 현재 인류의 진보가 조금이나마 더 낫다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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